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]][* [[아마데오 1세]]의 장남. [[제1차 세계 대전]] 때 이탈리아 제3군 사령관을 역임하였다.]와 아오스타 공작부인 [[엘렌 도를레앙]][* [[루이필리프 1세]]의 손자이자 프랑스 왕위 요구자였던 파리 백작 필리프의 차녀, [[후안 카를로스 1세]]의 외할머니인 루이즈의 언니다.] 사이에서 출생하였다. 아메데오는 매우 키가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.[* 당시 이탈리아 국왕이자 오촌 숙부였던 [[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]]가 고작 153cm의 단신이어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.] 아메데오 기예[* 이탈리아 육군 장교이자 이탈리아 외교관이었고, 전쟁에서 기병대를 지휘한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었다. 무려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정도로 [[장수]]한 인물.]에 따르면 한 언론인이 "Your Highness"[* 이탈리아어로 "your height"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.]라고 말했고, 공작은 농담으로 "198센티미터"(6피트 6인치)라고 대답했다. 아메데오는 나폴리 눈치아텔라 군사 학교에 들어가 [[이탈리아 왕국군]]에 입대했으며 [[제1차 세계 대전]] 동안 포병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. 이후 이탈리아 군대에 다시 합류하여 조종사가 되었다. 1932년에 그는 이탈리아 왕립 공군에 입대했고, 아메데오는 제2차 이탈리아-세누시 전쟁의 후기 단계 동안 [[로돌포 그라치아니]] 원수와 당시 리비아 주지사인 [[피에트로 바돌리오]] 밑에서 근무했다. 1931년 7월 4일 아버지인 [[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|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]]가 사망하자 후임 아오스타 공작 자리에 올랐다. 1937년 [[로돌포 그라치아니]]가 리비아로 가면서 다음 [[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]]의 총독이 되었으며, 가혹한 통치와 학살로만 일관했던 그라치아니와는 달리 유화적인 통치를 펼쳤다.[* 그래서 전후 [[하일레 셀라시에]]가 그의 가족들을 에티오피아로 초대하기도 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